1. 찬란한 젊음 그리고 젊은 Kirsten Dunst
키얼스틴 던스트라는 배우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와 동갑내기임에도 언니처럼 우러러보던 그 시절의 패셔니스타, 아이코닉한 배우. 이 영화를 본지가 20년 가까이 되었건만 젊은 키얼스틴과 젊은 내가 그 시절에 여전히 영상 속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168cm의 키에 깡마른 몸매로 스키지 청바지, 낡은 티셔츠, 플랫슈즈 차림으로 파파라치에 찍히던 그녀는 그 모습 그대로 크레이지/뷰티풀이라는 영화 속에 들어간듯 작품과 잘 어울렸습니다.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 '니콜' 그 자체였던 키얼스틴은 실제인지 연기인지 구분할 수 없을만큼 퇴폐적인 눈빛과 사랑스러움, 상반된 느낌을 아주 훌륭하게 믹스했습니다. 니콜의 세상만사 귀찮은 표정이 싱그러운 미소의 남자친구와 어울리며 점점 생기를 찾아가는 모습과 한국의 고등학교와는 180도 다른 미국의 고등학교 분위기를 접하는 것은 또하나의 관전 포인트 입니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는 가수 이상은의 '언젠가는' 가사처럼 이들이 얼마나 젊고 아름다운지, 얼마나 잊지못할 사랑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하이틴의 모습에서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다 자랐다고 생각할것이고 얼마나 미성숙한 존재인지조차 결코 알 수 없을것입니다.
2. 세상을 대하는 마음까지 완전히 다른 두사람
태생, 가정환경, 성격,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까지 같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니콜과 카를로스의 공통점은 나이와 서로를 향한 호기심뿐입니다. 니콜은 학업 뿐 아니라 세상사에 크게 의미를 두지않지만 카를로스는 집과 학교 사이의 거리를 극복할만큼 인생을 의욕적으로 살아갑니다. 정해진 틀에서 자신만의 선을 지키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남자와 자유롭다못해 목표도 욕심도 애초에 없는 날나리 여자가 서로의 매력에 푹 빠져 Crazy한 교집합을 Beautiful 하게 그려나가는 모습은 정말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부유한 동네에 통유리로 된 고급 주택과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재미, 니콜의 아빠와 새엄마의 옷차림 및 애티튜드는 또 하나의 볼거리입니다. 이와 대비되는 낡고 비좁은 카를로스의 집과 정감가는 가족들도 아주 볼만합니다. 미국의 이민자 가정이 겪는 고충과 이를 해소해줄만한 멋진 아들이자 어린 가장과도 같은 카를로스에게 연민 또한 느껴집니다. 이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언제나 공허한 니콜에겐 주어진 하루를 열과 성을 다해 살아가는 카를로스가 신기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서로가 가지지 못한것을 가진 두사람 무서울만큼 빠르게 서로에게 빠져듭니다.
3. 젊어서 한번, 늙어서 한번, 두번 보길 잘한 영화
젊은 시절에는 그 빛이 얼마나 눈부시게 하루 하루를 밝혀주었는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지나간 날의 아름다움은 지나간 후에야, 그것도 아주 멀리 지나온 후에야 보입니다. 무모하리만큼 사랑했던 젊은 날의 너와 나를 만나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봐야합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본 영화를 나이가 마흔이 넘어서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땐 키얼스틴의 모든 것을 내 자신과 동일시하며 감정을 이입했는데, 이젠 아직 어린 내 아들이 영화 속 카를로스처럼 잘 컸으면... 하고 엄마의 시선으로 보았습니다. 묘하고 슬프고 웃긴, What a life! 반드시 짧은 영화 소개 영상이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 숨쉬는 Full Version Story로 배우들의 신선한 호흡을 함께 따라가며 보기를 추천합니다. 한가지 위로가 되는 점은 카를로스 역활을 맡았던 제이 헤르난데즈가 이젠 <토이 스토리>에서 아빠 목소리 역활을 하고 있고, 니콜 역활을 맡았던 키얼스틴 던스트는 <파워 오브 도그>에서 엄마의 역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만 늙고 있는게 아니라 배우도 나이를 먹고, 영화도 연식이 오래 되어가는 이 당연한 상황에 안도감이 든다는 것! 다른 영화는 아무리 오래전에 본 것일지라도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진 않던데, 크레이지 뷰티풀은 뭔가 다르긴 합니다. DVD로 소장할만큼 좋아했던 영화, 그러나 요즘 누가 DVD로 영화를 보겠습니까! 참 세상은 인간과 달리 나이들어가면서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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